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말리 제국 (문단 편집) ==== 쇠퇴의 시작 ==== 슐레이만 케이타는 1360년에 사망했다. 슐레이만 케이타 사후 말리 제국은 오랜 전성기를 끝내고 조금씩, 그리고 서서히 쇠퇴하기 시작했다. 당시 말리 제국은 수많은 부족들로 이루어진 다민족 제국이었고, 제국의 경제는 지중해권, 아랍권과의 무역로에 의존하고 있었다. 그러나 슐레이만 케이타 이후 대대로 무능한 황제들이 즉위하면서 제국의 통치력이 크게 약화되었고 무역로들을 타 왕국과 부족들에게 빼앗기면서 말리 제국은 빠른 속도로 곳곳에 금이 갔다. 슐레이만 케이타가 죽은 직후 황위에 오른 자는 만사 캄바 케이타였다. 그러나 캄바 케이타는 즉위 후 9개월 만에 초스피드로 쫒겨났다. 캄바 케이타를 쫒아낸 이는 마간 케이타 1세의 아들들 중 하나였던 마리 자타 케이타 2세였다. 그러나 마리 자타 케이타 2세의 통치는 재앙에 가까울 정도로 처참했다. 그는 폭압적으로 황권을 휘두르며 민심을 잃어버렸고, 극도로 사치스러운 생활을 즐기면서 말리 황실의 재정을 파탄냈다. 다만 외부 세계에 대한 관심만은 잃지 않았던지 저 멀리 [[모로코]]의 아부 하산 왕에게 [[기린]]을 선물로 보내는 등 말리 제국을 외부에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고 전해진다. 마리 자타 케이타 2세는 1372년 중병에 걸려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할 정도로 쇠약해졌고, 1374년에 죽을 때까지 그 대신 신하들이 대신 국정을 돌보았다. 마리 자타 케이타 2세는 결딴난 국가 재정이라는 큰 똥을 남기고 사망했다. 다만 영토 면에서만 보면 심각할 정도의 침략은 없었던지라 그의 뒤를 이은 만사 무사 2세, 혹은 무사 케이타 2세는 생각보다 몰락하지 않은 제국을 물려받을 수 있었다. 무사 케이타 2세는 나름대로 마리 자타 케이타 2세의 폭정으로 무너져내린 제국의 국고를 채우고 교역로를 재활성화하는 등 제국 재건을 위해 노력했지만, 강력한 측근들의 존재 때문에 이전의 황제들만큼 막강한 왕권을 휘두르지는 못했다. 그의 재위기에 말리의 핵심적인 대도시들 중 하나였던 [[가오(도시)|가오]]가 [[베르베르인]]들과의 전쟁으로 인해 폐허가 되어버렸고, 가오는 훗날 들어설 [[송가이 제국]] 시기까지 옛 영광을 되찾지 못하고 황량한 돌더미로 변해버렸다. 1375년 이래 송가이족들이 말리 내부로 유입되자 말리 제국은 이들을 통제하는 데 큰 애를 먹었다. 다만 1380년대까지 말리 제국은 여전히 [[만사 무사]] 이래의 강역 대부분을 40여 년 가까이 유지할 수 있었으며, 영토는 무려 1,100,000km^^2^^에 달했고 경제 역시 이전보다야 못했지만 어느 정도 안정된 상황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